혹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주도를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가. 산방산을 등 진 노란 유채꽃밭에서 찍었던 사진, 비자림 숲을 거닐며 맡았던 짙은 풀 냄새, 새별오름에 올라 감상했던 석양, 눈 덮인 백록담까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국내 관광지 제주도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야하는 이유가 모두 다르다.

최근에는 육지에서도 카페 인테리어, 굿즈, 출판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주를 즐기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하나의 컨텐츠로 자리잡은 제주도. 제주의 삶을 기록하는 제주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주목받는 이유다. 

제주의 오리진을 발견하여 공간, 매거진 등에 녹이고 있는 컨텐츠그룹 ‘재주상회’는 아무도 하지 않는, 그래서 더욱 궁금한 제주의 이야기를 지금 시대의 언어로 가공하여 전달하고 있는 곳이다. 전직 여행전문기자였던 재주상회 고선영 대표를 만나 제주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삶을 들어봤다.

자유롭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2011년 봄, 제주에 정착해 2014년도에 컨텐츠그룹 ‘재주상회’를 창업했어요. 같은 해, ‘살아보는 여행’을 콘셉트로 한 제주 매거진 <인iiin>을 창간했고요. 로컬의 가치를 찾아내 매거진으로 만들고, 매거진 속 컨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오프라인화 하는 비즈니스를 이어가고 있어요. 개인 저서로는 <소도시여행의 로망>, <여행의 달인, 제주>, <당신에게 제주>, <언제나 제주> 등이 있고요.

본래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셨다고.

여행레저주간지에서 여행전문기자로 일했어요. 서울에 살 땐, 잠자는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을 일하며 보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회사를 그만두고 <소도시여행의 로망>이라는 책을 썼어요. 26개의 매력 넘치는 소도시와 마을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 중 제주가 가장 마음에 들어 눌러 앉게 되었죠. (웃음)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제주도는 살기 좋은 지역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매일매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제주가 좋아요. 눈에 보이는 풍경들과 사람들이 그냥 좋아요. 이곳에서의 삶이 정말 좋아요. 제주도의 풍경과 사람에게서 위안을 받고 영감을 얻어 열심히 일해요. 여기선 굳이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돼요. 이곳에서는 그런 것들이 눈에 안 보이거든요.

제주라는 컨텐츠는 여전히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섬만이 가진 멋진 컨텐츠가 지금도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로컬이 품은 오리진에 관심이 많습니다. 로컬의 라이프스타일, 자연, 사회적 환경처럼 쌓아온 것들의 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요. 

제주는 서울에서 가장 먼 탓에, 섬이었던 탓에 제주만의 오리진을 가장 뚜렷하게 보존해올 수 있었죠. 흙 속에 묻힌 유물을 찾아내듯, 이 섬만이 가진 특별한 이야기를 찾아 다니고 있어요. 제주는 그 존재 자체로도 매력이에요.

흙 속에 묻혀 있던 제주의 오리진을 발견해 컨텐츠로 만들어 내는 일을 ‘재주상회’에서 하고 계시고요.

제주를 기반으로 미디어, 브랜딩과 디자인, 상품 및 공간 개발, 운영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 중이에요. 청년 작가 에이전시, 전시와 아트마켓, 제주 라이프스타일의 디자인 브랜드와 로컬 편집숍, F&B공간 운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주를 이야기하며 동시에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어요.

제주도민이자 로컬 크리에이터인 에디터들과 함께 만드는 매거진 <인iiin>은 어떤 잡지인가요?

아무도 하지 않은, 그래서 더욱 궁금한 제주에서의 삶을 담아낸 로컬 잡지예요. 재주상회의 모든 시작은 매거진 <인iiin>에서 시작되고 있어요. 제주의 가치와 정체성을 찾아내 지금 시대의 언어로 가공하여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고, 최근에는 매거진 컨텐츠를 오프라인 공간에 풀어놓는 컨텐츠 전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답니다. 

재주상회에서 기획한 여행자 라운지 ‘사계생활’에도 제주의 오리진을 담아내셨다고.

‘사계생활’은 안덕면 사계리에 위치한 40년 된 은행 건물을 개조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에요. 1층은 카페로, 2층은 코워킹 스페이스로 활용하고 있어요. 입구와 연결되는 ATM, 카페 공간으로 사용되는 지점장실, 카운터로 활용되는 은행 창구 등 옛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었어요.

또한 로컬 여행자들을 위해 이 마을에서 가볼만한 식당, 카페, 숙박시설 등을 정리해 팜플렛으로 만들어 비치해두었고요. 사계생활은 단순한 카페가 아닌 로컬 여행자들을 위한 컨시어지의 역할을 지향하고 있죠.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사계리’라는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되었으면 했고요.

이외에도 재주상회에서 선보이는 제주 컨텐츠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제주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세요?

지금 여기에서 왜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컨텐츠가 재주상회에, 소비자들에게, 지역에 즐겁고 도움이 되는지 묻고 또 묻습니다.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꼭 갖춰야 할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곳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는 것이 첫 번째라고 생각해요. 지역의 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지역 기반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겠어요.

제주 로컬 크리에이터들과 어떤 방법으로 교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염탐합니다. 로컬에서 로컬의 이야기를 가장 힙하게 풀어내는 크리에이터들을 (남몰래) 스토킹하고 있어요. (웃음) 도저히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힙쟁이 크리에이터들을 질투하며 애정하고 있죠. 

시기와 질투가 절정에 달할 즈음, 스윽 연락을 해요. 그리고는 <인iiin> 매거진에 초대를 하죠. 그것을 시작으로 크리에이터들의 허리춤을 꽉 쥐고 놓지 않습니다. 또 재미난 프로젝트로 크리에이터들을 살살 꼬드겨 함께 하죠. 재주상회도, 함께하는 크리에이터들도 그리고 그 결과물을 공유하는 독자와 소비자님들 모두가 행복한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게 목표이고요.

제주도에서 작은가게들이 오래도록 운영을 지속할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작은가게일수록 운영자가 그 공간 안에서 스스로 행복한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그러려면 운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죠. 가장 본인다운 일을 본인 스타일로 운영하면 그것을 좋아하는 손님들과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가까운 미래에 새로 계획하시는 일이 있다면?

오래 전, 제주에 존재했던 제주만의 브랜드를 찾아 재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해요. 이 일은 시간이 좀 걸릴 수 있겠네요. 그리고 새로운 매거진으로 독자님들을 찾아 뵐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땐 전혀 새로운 분야로 인사드릴 것 같아요. 

앞으로 제주 로컬 기획자로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하실 생각이세요?

재미있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요. 로컬하게 만들어 힙하고 글로벌하게 완성하렵니다.

향후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까요?

개인적 목표는, 우리 재주상회 동료들의 연봉을 삼성만큼 많이 주는 것이고요. 재주상회는 더 재미난 로컬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작당모의하며 ‘로컬재벌’을 꿈꿔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