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로컬푸드는 식문화와 푸드 시스템의 변화다
전정환
21.07.30
최근 몇 년 사이 로컬푸드의 흐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런데 로컬푸드라는 말이 다양하게 쓰이면서 정작 '로컬푸드'가 무엇인지에 대해 혼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단순히 지역 특산물을 로컬푸드라고 이름만 바꾸어 부르는 경우도 보인다. 서울에서 맛보는 제주 감귤, 영주 사과, 강원 감자, 영덕 게, 여수 갓김치는 로컬푸드라고 볼 수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맞고 어떤 의미에서는 틀리다. 그렇다면 로컬푸드의 기준은 무엇일까?
현재 로컬푸드가 부상하는 것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하면서 더 건강한 먹거리, 지속가능한 농업과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공감 등 여러 가치가 중요하게 떠오르고, 그만큼 더 창의적인 로컬 컨텐츠에 대해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농수산식품의 생산, 가공, 유통, 소비 모든 사슬이 새로운 시대에 맞춰 전환되고 있다. 로컬푸드 현상은 우리의 식문화와 푸드 시스템의 새로운 무브먼트인 것이다.
이전에 대다수 사람들은 값싸게 식품을 구매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전국적으로 효율성 중심의 공급과 소비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그전에는 교통과 유통 시스템의 한계로 각 지역에서 다양한 작물을 경작하고 소비했다. 하지만 규모와 효율 중심의 유통망 구축으로 대부분의 작물이 서울 가락시장으로 모인 후에야 다시 전국 각지로 재분배되었다.
따라서 각 지방들은 지역 특산물 중심으로 단일 작물을 선택과 집중하여 생산하는 것이 유리하게 됐다. 생산자들은 농협을 통하거나 밭떼기로 유통업자에게 넘기는 것이 더 편리했다. 전국이 단일 푸드 시스템으로 통합되게 된 셈이다. 그러다가 경제 성장으로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하면서 지난 10년 사이에 기존의 식문화와 푸드 시스템에 중요한 변화가 시작됐다.
최근의 로컬푸드의 주요한 흐름과 동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건강을 중요하게 여기는 수도권 소비자들이 주도하는 변화다. 수도권 소비자들을 위해 전국 각지의 친환경 생산자들이 참여 판매하는 오프라인 직거래 시장이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시장으로는 문화행사로 접근을 한 마르쉐@와 경제성으로 접근을 한 바로마켓이 있다.
마르쉐@는 '돈과 물건의 교환만 이루어지는 시장'이 아닌 '사람, 관계, 대화가 있는 시장'을 지향한다. 농부시장 마르쉐@은 2012년 혜화에서부터 시작해서 양재, 명동, 성수 등으로 확대됐다. 바로마켓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2009년 만들었으며 과천 경마공원에서 경마 대회가 없는 날 친환경 생산자들이 와서 프리미엄 농산물을 혁신적인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과천 인근에 거주하는 주부들이 매주 쇼핑을 가는 명소가 됐다.
둘째, 온라인 유통 플랫폼이 열어낸 전국적인 변화다. 온라인 커머스와 물류 혁신으로 빠른 배송이 발달하면서 온라인으로 각 지역의 농수산식품을 직접 거래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카카오 톡스토어가 이러한 흐름을 주도했다. 2020년 코로나 위기에서 본격화된 라이브커머스는 온라인 유통을 더욱 가속화했다. 우아한형제들(대표 김봉진)은 배달의민족 앱에 전국별미 메뉴를 추가하고 지역의 콘텐츠를 담아 전국에 로컬푸드를 유통하기 시작했다.
셋째, 생산자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소비자를 타겟하여 브랜딩을 하고, 온오프라인 직거래 플랫폼을 활용하는 흐름이다. 컨텐츠, 브랜딩, 마케팅, IT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청년들이 농촌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여 살리는 경우다. 서울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원승현은 고향 영월로 귀농해서 그의 아버지가 1983년부터 시작한 유기농법 토마토 재배를 이어갔다. 그의 역량을 활용해 유기농 토마토의 컨텐츠를 만들고 브랜딩하여 직거래를 통해 지금은 40일가량 고객이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살림제주 제주담을센터의 로컬푸드
넷째, 지방도시 인근에서 생산된 농산물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유통하고 소비하고자 하는 흐름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우리나라는 서울로 모든 농산물이 모였다가 다시 전국으로 배분되다 보니, 지역의 생산물들은 지역 특산물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이 되어 농산물의 이동거리가 길어지게 됐다. 더 신선한 지역 농산물을 먹고자 하는 소비자의 니즈와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탄소발자국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은 로컬 생산, 로컬 소비의 움직임을 키우고 있다.
기존의 대규모로 효율화된 유통망에 비해서 로컬 생산, 유통, 소비는 시스템이 미비하여 오히려 비용이 증가하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공공의 역할 변화가 중요한 영역이다. 완주군의 경우가 민관협력으로 시작해 지속적인 노력으로 로컬푸드 직매장을 발전시킨 곳이다. 한살림제주는 2020년 제주담을매장과 제주담을센터를 만들면서 제주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함께 판매하고 직거래장터인 제주담을장도 열고 있다.
제주담을센터의 파머스마켓 '담을장'
농촌이 없고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 서울의 로컬푸드와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지방도시의 로컬푸드는 그 의미와 형태가 다를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 사는 이들이 원하는 로컬푸드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다. 또한, 경제 수준이 높은 이들은 다소 가격이 높더라도 새롭고 특별한 스토리가 담긴 지역의 먹거리에 반응한다. 프랑스의 시민들 중 상당수가 미식가이고 와인과 음식 하나하나에 대해 그것이 어디서 어떤 이들이 생산했으며 어떤 맛의 차이가 있는지 얘기하는 것처럼, 한국도 선진국 시민으로서 증대한 표현 욕구와 가치가 식문화에도 반영되는 흐름이 커져가는 것이다.
지방도시는 서울보다는 다소 늦게 지역 소비자들의 표현 가치가 증대되고 있다. 하지만 지방도시는 농촌이 인접해 있다는 특징이 있어서 서울과는 다른 지역생산, 지역소비의 로컬푸드가 가능한 곳이다.
제주는 서울과 지방도시의 특성이 동시에 드러나는 매우 특별한 지역이다. 따라서 다른 지방도시들에게는 서울이 아니라 제주가 벤치마킹의 대상으로서 더 적합하다. 2010년경부터 문화이민자 이주와 IT기업 이전 등을 통해서 자기표현 가치가 높은 수도권 및 전국의 창의적인 사람들이 대거 제주로 유입됐다. 이러한 흐름 덕분에 제주는 커피, 와인, 음식 등이 다양화되고 질이 높아지며 도민들도 미식이 함께 발달하게 됐다.
한편, 제주는 1차산업이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섬으로서 오랫동안 고립되었기 때문에 지역 식자재를 활용한 지역 음식 문화가 발달해 있다. 지역에 다양성이 높아지고 지역민과 이주민의 접점이 늘어나면서 서로 다른 흐름이 만나서 새롭고 창의적인 로컬푸드 무브먼트가 태동한 곳이 제주다.
서울에서 40년 이상을 살다가 제주로 이주해서 7년째 살아가면서 나는 초반에 도민 맛집인 식당을 찾았다가 여러 번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제주의 도민 식당들은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맘먹고 찾아갔다가 퇴짜를 맞으면서 나는 식당주인이 서비스 마인드가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차차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됐다.
서울의 경우는 언제든 손님이 가면 음식을 팔 수 있도록 미리 충분한 재료를 준비해둔다. 제주의 식당에서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는 것은 매일매일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의미다. 내가 사는 동네 김밥집은 아예 냉장고가 없다. 그날 재료를 사서, 그날 김밥을 말고 다 팔리면 오후 3~4시라고 하더라도 문을 닫는다. 그곳의 김밥은 유명 김밥 체인점에 비하면 60~70%로 싼 가격임에도 훨씬 맛있다. 전국 유명 김밥 체인점은 육지에서 재료를 일괄 구매해 지역 점포로 보내준다. 준비해둔 재료는 3일까지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니, 두 식당 중 어디의 김밥이 더 맛있겠는가. 동네 김밥을 알게 된 후 나는 더이상 김밥 체인점을 가지 않는다.
관광객들이 제주에 오면 먹는 음식은 주로 지역 특산물인 전복죽, 갈치, 회, 흑돼지구이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6년간 관찰한 바, 제주도민들은 점점 더 다양한 음식을 먹고 있다. 파스타, 인도요리, 동남아 음식 등.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음식의 재료들이 제주의 전통시장에서 산 재료이며, 식당마다 제주의 원물과 컨텐츠가 융합된 창의적인 레시피들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식당들은 대부분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고 있는 파인다이닝을 추구하는 작은 식당들이다. 관광객보다는 도민들이 지속적으로 자주 찾는 식당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렇다고 이제 제주 식당의 파스타와 동남아 음식이 모두 로컬푸드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반 식당과 로컬푸드를 구분하는 것은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달려 있다. 로컬의 자원과 새로운 컨텐츠를 융합하는 이들이 그들이다.
이렇게 창의성을 바탕으로 로컬의 컨텐츠와 자원을 활용한 식당은 자신의 점포를 확장하기보다는 온라인커머스에서 사업 성장의 기회를 찾기도 한다. 제주 원도심 샛물골 여관길에 올해 초 오픈한 일도가공은 15평 내외의 작은 가게다. 서울에서 디자인하던 창업자와 두바이에서 호텔매니저를 했던 매니저가 제주 원도심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2020년 하반기에 창업한 곳이다. 이제는 예약하거나 줄을 서야만 먹을 수 있는 곳이 됐다.
이곳에 가면 1만원이 조금 넘는 타파스 같은 느낌의 창의적인 레시피들이 있다. 인근 동문시장에서 수급한 제주 원물에 동남아 소스로 요리하고 중국과 동남아 술을 판다. 메뉴를 주문하면 매니저가 어떤 재료로 어떻게 요리되는지 설명을 해 준다. 대표가 제주의 청귤과 하귤로 새롭게 실험하는 술과 소스에 대해 맛보도록 권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일도가공은 밀키트를 제작해 전국에 유통하려고 준비 중이다.
일도가공 대표가 청귤과 하귤로 만든 소스와 술을 손님에게 시식하도록 하고 있다.
무엇이 '로컬푸드'인가? 나는 많은 이들에게 로컬푸드는 지금도 생성되고 있다고 얘기한다. 제주의 경우 원도심은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고 교류하고 융합되는 곳이었다. 1980~90년대에 호남에서 많은 이들이 유입되었고 그들이 정착하면서 기존의 제주 식문화와 원료를 호남의 요리법으로 재해석해서 제주의 로컬푸드를 만들어냈다. 마찬가지로 지금 제주에서 다양한 국적의 식문화가 제주의 원료, 그리고 컨텐츠와 융합되면서 창의적인 레시피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성의 과정이 로컬푸드다. 그들 중 10년, 20년이 지나도 남는 것들이 제주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음식도 오랜 기간 뒤에 고착화되고 매너리즘에 빠지면 더이상 로컬푸드라고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지역 특산물을 로컬푸드라고 100% 말하기 어렵다고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규정되고 창의성과 생명력을 잃는 순간 로컬푸드의 매력은 사라진다.
사람들의 소비 수준이 높아지고 다양해지고, 온오프라인 유통 플랫폼이 발달하고,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이 생산, 가공에 있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 그러한 식문화와 푸드 시스템의 정체되지 않는 무브먼트 자체를 '로컬푸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로컬푸드는 그냥 최종적인 생산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원물과 식품, 생산, 가공, 유통, 소비의 문화와 시스템을 아우르는 창의적인 생태계인 것이다.
전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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