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정환 칼럼] 청년에게 좋은 도시와 일자리는 무엇일까
전정환
22.05.13
코로나 펜데믹은 우리에게 원격근무 문화와 제도를 남겼다. 지난 2년 동안 많은 기업들이 코로나 확산 위험을 막기 위해 임시적으로 원격근무제를 운영해왔다. 최근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몇몇 기업들은 주 5일 출퇴근제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다. 원격근무에 적응해온 많은 직원들이 매일 출근하는데 큰 부담감을 토로하고 있다. 2년 이내 입사자들은 입사 후 지금까지 내내 원격근무로 일한 사람도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여행지에서 워케이션을 즐기고 있거나, 고향에 가서 부모님 집에 머물며 동네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다시 서울, 판교의 직장으로 출퇴근하려면 집부터 다시 구해야 할 것이고, 지방에 좋은 기업이 있다면 당장 이직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우수한 인재 유치가 최고의 경쟁력이 되는 IT 기업들이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스타트업 중 일부는 처음부터 원격근무 문화를 도입했고 성장하며 고용을 늘리고 있다. 큰 기업들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원격근무제를 정식 제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4,900억원을 들여 판교에 신사옥을 지은 네이버는 지난 5월 4일에 직원들에게 ‘주 3일 현장출근’ 혹은 ‘전면 원격근무’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새 근무제도를 선포했다. 이제 자신이 원하는 지역에서 살면서 근무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연이어 다른 IT 기업들도 유사한 제도들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지난 50여 년간 압축성장을 했지만 인구감소, 지역불균형 등 또 다른 큰 문제를 안게 되었다. 코로나가 남긴 원격근무제 활성화는 한국 사회의 지속 발전에 핵심 키가 될 수 있을까. 이러한 기회를 살리려면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를 정확히 알고,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평안한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좋은 도시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다음 단계로,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청년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설계해 가는 것이다.
워케이션을 위한 오피스제주
수도권 집중 가속화 문제는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의 큰 위기를 낳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도권에 인재, 자본 등을 집중하면서 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로의존성 때문에 수도권은 점점 더 과밀·팽창하고, 지방은 쇠퇴하고 소멸할 위기에 처해가는 중이다. 지방대학은 '벚꽃엔딩'이라고 표현되는 폐교의 단계를 겪고 있고, 지방기업들은 폐업한다. 지방도시는 활력을 잃어가고 핵심 인프라가 밀집되어 있는 서울로 가기 위한 임시 거처쯤으로 전락했다.
인구학자 서울대학교 조영태 교수는 현재 추세로 간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가속화되어 2050년에는 청년인구의 부족으로 국민연금이 고갈될 정도로 큰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0.81(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수)로 OECD 국가 중 최저다. 그중에서도 서울은 0.63명으로 전국 최저다. 초저출산율은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국가의 특징이다. 한국이 서울을 단일핵으로 하는 도시국가화됐다는 진단이다. 도시국가에서는 인구과밀과 과다경쟁이 일어나며 '생존'과 '재생산' 중에 청년들은 '생존'을 선택한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인구가 급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방은 오랜 기간 수도권으로 청년 인재들을 공급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지방에 거주하는 청년 인구마저 급격히 줄어들면서 수용 없이 공급만 해오던 지방이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 개발도상국 시기, 산업화 시기 때와는 달리 청년들이 원하는 좋은 직장은 단순히 급여가 높은 곳이 아니라 자신에게 성장 기회를 주는 곳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훌륭한 선배와 동료들이 있어야 한다. 또한, 과거와 달리 평생 직장의 시대는 사라졌고 청년들은 이직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를 향상시킨다. 이직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좋은 기업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청년들은 성장 기회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며, 자연스럽게 지방도시에 청년들이 더이상 머무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서울 초등학생이 그린 한반도 그림
(출처 : 온라인커뮤니티 https://ohfun.net/?ac=article_view&entry_id=11525)
지방의 새로운 가능성을 살리려면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제주 이주 실험을 리뷰하고 이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2004년에 시작된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제주 이주 실험은 2006년 미디어본부와 검색본부를 중심으로 제주에 250여 명이 이주해 근무하고 2012년 다음스페이스닷원, 2014년에 다음스페이스닷투를 짓고 650여 명까지 근무 인력을 늘렸다. 다음 직원들은 제주의 좋은 자연과 환경에서 근무하면서 높은 만족도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립감을 느꼈다. 오프라인 중심의 기업 문화 때문에 서울과 제주 근무자 사이의 협업에 어려움을, 또 제주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다양한 기업들이 주변에 없어 교류하고 성장할 기회를 잃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많은 이들이 3년 남짓 근무하고 다시 서울, 판교로 돌아갔다. 결국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제주 본사 이전 후 지속성장하지 못하며 카카오와의 합병을 선택했고, 제주 근무자수는 다시 줄어들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처음 16명의 근무자가 이주했던 곳은 애월 유수암리, 근무지는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는 한적한 펜션이었다. 그후 2006년 도심에서 비교적 가까운 제주시 오등동에 글로벌미디어센터(GMC)를 세웠고, 이곳에서 블로거뉴스, 아고라, 웹툰 등 혁신적인 서비스들을 만들어냈다. 2012년에는 첨단과학기술단지로 조성된 중산간으로 올라가 사옥을 지었다. 근무 인원은 늘었지만 도심에서 멀어졌고 한적한 곳에 고립됐다. 만일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도심에 자리를 잡았다면 어땠을까? 그곳에 다양한 기업들이 직원 규모에 상관없이 제주에 이전해 스타트업 다운타운을 이루었으면 15년 이상이 지난 지금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도시는 원래부터 다양한 인재들이 모여들어 교류하고 성장하는 곳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기업을 만들기도, 인재를 채용하기도 하면서 생산자 역할을 한다. 대구시, 대전시, 광주시, 부산시, 제주시 등 모든 지방거점 도시들이 그러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점차 서울 중심화가 가속화되면서 지방도시들은 그저 소비 도시이자 인재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 거쳐가는 통로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지방도시는 도시성을 상실해갔고 지방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어갔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 주어진 숙제는 지방도시들의 도시성을 되찾는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을 공론화하며, 지방도시의 ICT 인재양성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지방도시에서는 기회를 얻고자 하는 많은 인재들이 양성돼 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지역에 대한 장소애를 경험하지 못한채 궁극적인 행선지를 서울, 판교로 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대전 KAIST, 울산 UNIST, 광주 GIST, 대구 DGIST와 같이 지방도시에서 뛰어난 과학기술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등학교도 대전, 광주, 대구, 부산에 소재하며 10대 때부터 개발에 흥미를 느낀 청년들을 전국에서 발굴하여 기숙사, 전문 교육을 제공해 뛰어난 인재로 키워 내고 있다. 이들은 대학 진학에 관심이 없으며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판교에 있는 카카오, 네이버, 우아한형제들 등 유수의 기업에 고액 연봉을 받고 취업하고 있다. 서울에서 시작된 삼성청년소프트웨어아카데미(SAFFY)는 고용노동부의 사업으로 연계되어 대전, 광주, 구미, 부산으로 확대됐다. 또한 내일배움카드를 확대해서 지방도시에서 인공지능 개발자 양성 등 다양한 교육기회를 확대했다.
이렇게 양성된 지방 인재들은 여전히 지방에 취업할 만한 좋은 기업이 없다고 하며 서울, 판교로 향한다. 지방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장하며 여러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이들은 기업의 성장단계에서 인재들을 찾지 못해 역시 서울, 판교로 이전한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해커톤에 참여하고 있는 대덕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등학교 학생들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의 위기를 막기 위해 행정안전부에서는 지역소멸 위기 89개 지역을 선정하여 매년 1조씩 10년간(총 10조)를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자금융 앱 서비스 토스를 만든 비바리퍼블리카는 남해군의 지원으로 최근 바다가 보이는 휴양지에 워케이션 오피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체류 인구를 늘릴 뿐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청년 세대들이 원하는 것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고, 자신들에게 성장 기회가 있는 도시다. 이러한 도시가 수도권 밖에 없기 때문에 지방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한국 사회의 숙제는, 지방도시들을 청년세대에 맞는 창의적인 도시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원하는 도시는 어떤 요소를 갖추어야 할까? 첫째, 조직 문화가 좋고, 자신의 커리어 패스에 도움이 되는 창의적 기업이 많은 도시. 둘째, 다양한 사내외 인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개인이 지속적으로 배우며 성장하고 네트워크를 획득할 수 있는 도시. 셋째, 그 지역만의 차별화된 매력이 있는 로컬 문화와 커뮤니티를 가진 도시. 넷째, 서울과의 높은 접근성(교통 연결성)을 통해, 그 지역에 부족한 자원을 필요 시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가진 곳. 다섯째, 주말 나들이를 다닐 수 있는 매력적인 자연, 문화가 있는 인근 지역. 여섯째, 커피, 와인과 음식 문화가 발달하고 동네책방 등 커뮤니티 문화 공간이 있는 곳. 일곱째, 미혼인 청년들의 경우 연애할 사람을 만나고 데이트하기 좋은 스폿이 풍부한 곳. 여덟째, 기혼인 부부의 경우는 출산과 자녀 양육, 교육에 유리한 지역 여건을 가진 곳이다.
이러한 도시를 하루아침에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꾸준히 만들어간다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가 남긴 유산인 원격근무 문화와 제도는 이러한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준다. 희망적인 것은 지방도시에서도 다양한 좋은 회사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지방에도 다양한 기업과 인재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이들이 새로운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도 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변화의 발화점으로써 시골 마을이 아닌 지방도시의 도심, 특히 그 지방의 문화 역사 자원을 가진 원도심의 잠재력이 크다.
10년, 20년 이상 장기간에 걸리더라도 청년들이 일하고 살아갈 도시의 선택지가 다양해지도록 하는 것, 다양한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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