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최유진의 관점] 매력적인 공간을 창조하는 관광두레 사업 3 - 부여 편
최유진
22.06.29
부여는 충청남도에 있는 인구 6만 3천여 명의 군단위 지방자치단체이다. 동쪽으로는 논산, 북쪽으로는 공주, 남쪽으로는 전라북도의 익산시 및 군산시와 접한다. ‘부여’라는 명칭은 한민족의 기원이 되는 예맥족의 부여에서 따왔겠지만, 현재의 부여군은 역사 속 부여와는 상관이 없다. 백제의 수도였던 사비성이 부여에 있는데 부여의 시조인 온조가 부여를 계승하고자 하는 의식이 강해 스스로 성을 부여씨로 개명한 것에서 착안하여 지명이 부여로 굳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960년대 부여군의 인구는 20만 명에 달했다. 금강내륙수운이 제 역할을 할 때 부여는 충청권의 대표적인 상업 도시였으나 철도와 경부고속도로 등이 개통하면서 이들이 지나지 않는 부여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의 인구는 1960년대의 삼분의 일 정도이며 반등하지 못하고 지속해서 감소 추세에 있다.
당연히 부여군 전체에 ‘도시재생’이 매우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21년 10월에는 규암면을 중심으로 도시재생 사업이 외부 전문가의 참여로 진행된 바 있다. 하지만 주민과의 관계 설정 미흡으로 인해 도시재생 사업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의문이다. 현재는 관광두레 사업체와 마을공동체 등을 중심으로 도시의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는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부여의 사례를 통해 도시재생 과정에서 관광두레 사업체의 바람직한 역할을 정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부여를 찾았다.
부여군의 관광두레 사업은 2020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관광두레를 런칭한 연도가 2013년임을 고려할 때, 시작은 분명 늦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부여군의 관광두레 생태계는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우선 짧은 시간 안에 출범한 관광두레 사업체의 개수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불과 만 2년이 지난 시점에 부여군에는 아홉 개의 관광두레 사업체가 발진한 상태이다. 간단히 소개해보면, 먼저 ‘㈜수북로힐’은 부여군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업 지역인 규암면을 넘어 부여군 전체를 보더라도 손꼽히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피크닉 카페, ‘수북로 1945’를 운영하는 주민사업체이다. 수북로 1945는 전편에서 소개한 천안의 카페 카프닉처럼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소규모 행사가 진행되는 사랑방 같은 공간의 역할도 하고 있다.
㈜수북로힐이 운영 중인 ‘수북로 1945’의 전경
‘요월대언덕㈜’은 부여군민이 사랑하는 백마강과 연꽃단지의 고장 장암면에 있는 주민사업체로서 현재 백마강 위로 뜨고지는 달의 풍광이 매우 아름다워 ‘달꽃’이라는 브랜드로 상품을 개발 중이다. 필자는 부여군의 관광두레 사업체가 일부분 참여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지난 6월 25일 규암장터를 찾았다. 이곳에서 요월대언덕㈜에서 개발하여 출시를 앞둔, 부여의 여행지를 소개한 보드게임이 군민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부여의 공간과 공간, 사람과 사람, 공동체와 공동체를 잇는 보드게임으로 부모와 장터를 함께 방문한 아이들이 자기의 순서가 오기만을 기다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요월대언덕㈜에서 개발한 보드게임의 시연 장면
이 외 관광두레 주민사업체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규암장터가 열리는 규암면에는 ㈜수복로힐 외에도 ‘㈜생산소’와 ‘㈜부여선샤인’ 그리고 ‘㈜취향창고’ 등이 위치하고 있다. ㈜생산소는 농경사회생활상을 재해석하여 생활도구를 제작하고 대장장이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업체인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비즈니스 모델이 매우 흥미로웠다. ㈜부여선샤인은 가든 여행을 컨셉으로 규암마을투어를 운영하고 있으며, ‘사비 맥주’를 출시하여 시장에 큰 호응을 얻은 ㈜취향창고는 맥주와 전통주 생산뿐 아니라 ‘지역술’을 매개로 로컬푸드와 지역양조장을 연계한 관광 아이템까지 개발하고 있다.
부여군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부여읍에는 ‘뒷개 한옥마을협의회’와 ‘㈜정림스튜디오’가 위치하고 있다. 뒷개 한옥마을협의회는 부여읍 한옥단지 내의 다섯 개의 한옥 대표들이 함께 모여 만든 주민사업체로서 단체 숙박객을 위한 한옥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부여의 대표적인 한옥마을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정림스튜디오의 주요 상품은 가족사진, 연인 데이트 사진 등 관광객을 위한 사진 촬영 서비스와 앨범 및 액자 제작 등이다. 한복을 대여하는 것이 이채로운데 뒷개 한옥마을협의회와의 협업이 기대되는 상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홍산면에는 ‘아홉사리관광’과 임천면에는 ‘만세장터영농조합법인’이 있다. 아홉사리관광은 홍산의 대표 지역 자원인 ‘보부상’ 자원을 기반으로 보부상 투어 및 복식체험 등을 운영 중이다. 지역의 역사 이야기를 현대로 이은 점이 매력적이다. 부여군의 관광두레 사업을 이끄는 중인 임지선 PD는 만세장터영농조합법인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컸다. 관광두레 사업이 지향해야 하는 바를 일종의 모델처럼 보여주는 주민사업체이기 때문이다. 만세장터영농조합법인은 같은 마을 일곱 명의 어머니가 모여 임천면의 농산물을 이용해 강정과 반찬을 만들고 장터도 직접 운영하여 이를 판매하는 방식의 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는 십시일반 출자금을 모아 오프라인 매장을 꾸미기 위하여 빈집을 구매하여 리노베이션 중이다.
부여의 관광두레 사업체와 동거동락하는 임PD는 본인을 사회적경제인 출신으로 소개했다. 임PD에 따르면,. 협동조합 법인으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협동조합 주인’에서의 활동이 관광두레 사업체를 컨설팅하는 데 매우 소중한 기반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사회적 약자와 동행하는 경제 체제인 사회적경제가 부여에서는 관광두레로 이어지고 있었다.
규암장터가 열린 ‘123 사비 레지던스’ 1층에 예술인들의 생산품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부여의 쇠퇴 정도는 매우 심각하다. 규암면에서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산발적이나마 진행된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도시재생 사업이 시작되고 적지 않은 외부 자원이 투입되었으며, 외부에서 전문가로 자리매김한 기획자들이 본인의 기획을 부여에 적용하고자 규암면을 찾았다. 그렇게 적지 않은 공간이 새롭게 단장하여 주민과 관광객에게 선을 보였다.
규암면의 담배가게를 리모델링하여 재탄생한 동네 책방 세간
대체로 외부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규암면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탄생한 동네 책방 ‘세간’이나 ‘웃집’ 등은 젊은 세대에게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공간의 탄생에 있지 않다. 건물의 재활용 과정에서 탄생한 공간은 도시재생의 수단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도시재생을 추진하는 과정이다. 세계적인 도시개발 컨설팅 그룹인 ‘어반 랜드 인스티튜트(Urban Land Institute)’는 도시재생의 일반 원칙(어떤 도시재생 사업에도 적용되는 원칙)을 제시한 바 있는데, 제시된 원칙 중 하나가 바로 ‘협업’과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다. 도시재생 과정에서 관료와 기획자 그리고 지역 주민이 협업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도시재생의 결과물은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관료 혹은 기획자의 단독 기획 등으로 도시재생이 추진되고, 결과물도 지역 주민과 유리된 건물 중심이라면 재개발 혹은 재건축과 차이가 없어진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도시재생이라 할 수 없다.
전문가에 의한 규암마을의 도시재생 사업은 마을 주민과 협업의 산물로 보이지는 않았다. 기획자는 기획자대로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필자가 만나 본 주민들은 대체로 ‘건물의 재활용’ 그 이상의 사회적 가치가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서 창출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협업의 과정이 생략되었을 뿐 아니라 주민의 의사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기에 그런 과정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탄생한 몇몇 건물에 주민들은 애정이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도시재생 사업은 이미 추진되었고 그 결과로 탄생한 공간들은 지역적 자산으로 ‘그곳’에 주민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규암장터는 부여에 터를 잡고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인들이 스스로 기획한 장터이다. 관광두레 사업체는 이 장터 안에서 예술인들과 어우러지고 협업한다. 장터의 수익은 10% 적립되어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는 데 활용된다고 한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부여의 새로운 동력이 생겨날 희망이 적립되고 있다.
부여의 관광두레 사업체 방문을 통해 얻은 교훈은 ‘어우러짐’이다. 부여의 관광두레 사업체는 지역 예술인과 어우러져 장터를 성공적으로 기획해 냈다. 또한, 앞서 설명하지 않았지만 부여의 사회적경제기업과 어우러져 외부 관광객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사회적기업과 관광두레 사업체가 협업하여 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이를 판매 중이다. 사회적기업가 출신인 임지선PD의 활약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부여의 관광두레 사업체 방문에서 느낀 또 하나의 교훈은 ‘이음’이다. 부여의 관광두레는 역사 자원과 현재를 잇고, 도시와 농촌을 잇고, 로컬푸드와 생산자를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관광두레 주민사업체가 없었다면 단절의 상태로 존재했을 수도 있는 주체들이 이어져, 하나의 연결망을 형성한 것이다. 지금은 파편화된 단절의 시대이다.
마지막으로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기대 섞인 희망을 이야기하자면, 마을 주민의 삶과 유리된 도시재생 사업의 공간을 이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하여 관광두레 사업체가 역할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부여의 재생의 길이 새롭게 열릴 수 있다는 점이다. 도시재생은 ‘도시가 직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도시의 경제적, 물리적, 사회적, 환경적 개선과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비전과 일련의 행동’을 의미한다. 도시재생이 기존의 재개발 및 재건축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지역 주민의 삶을 안정감있게 지켜준다는 점이다. 지역 주민을 도시 밖으로 내몰지 않고 그들의 삶을 지속해서 개선하고 향상하는 것이 도시재생인 것이다.
규암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부여의 첫 도시재생 사업들은 외부의 평가와는 달리 주민으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외형적 업그레이드에 치중했고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소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형적 자산으로라도 남은 새로운 공간을 제대로 활용해 내는 기획을 누군가는 해내야 하며, 그 기획을 어우러짐과 이음의 철학을 바탕으로 관광두레 사업체가 해낼 수만 있다면, 부여의 도시재생 시즌 2는 성공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다. 결국 지역 주민의 삶을 지켜내고 그들의 삶을 지속해서 개선하고 향상할 수 있는 주체는 지역 주민일 수밖에 없으며 부여의 사례에서는 관광두레 사업체가 적임의 위치에 있다. 사업체의 창업과 규암장터를 기획한 협업의 과정을 통해 성장한 관광두레 사업체가 도시재생의 주역이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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