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구 소제동 솔랑시울길 골목 어귀에는 이미 오래 전 시간이 멈춘 듯한 건물 하나가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빨강, 하양, 파랑 간판이 빙그르 돌아가는 이곳은 대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이발소인 ‘대창이용원’이다. 

재개발을 앞두고 주민들이 하나둘씩 떠나 골목이 조금은 쓸쓸해 보일지 몰라도, 이용원 안만큼은 여전히 단골들의 말소리로 가득하다. 열여섯 때 잡은 가위를 여든이 넘은 현재까지도 꼭 쥐고 있는 이종원 이발사를 만나봤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60년 넘게 여기 소제동에서 이용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발사 이종원입니다.

이발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이게 얘기를 하려면 좀 긴데 짧게 말하면, 가난해서 그랬어요. 옛날에는 중학교에 들어가려면 입학시험도 보고 들어가야 했어요. 입학하려고 오는 사람은 천 명인데 480명만 뽑는 거지. 나도 입학시험에서 480명 중에 48등을 해서 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됐는데 입학금으로 10만 원을 내라고 하더라고. 그때는 6.25 전쟁도 끝난 지 얼마 안 되고 하니까 집에 돈도 없었고, 당시 10만 원은 무지 큰돈이기도 했지. 학교에서 입학금 내는 기간도 연장해주긴 했는데 결국 마련을 못 했어. 그래서 학교는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다 보니 가위를 잡게 된 거예요. 공업소도 다녀보고 했는데 생각보다 이 일이 잘 맞더라고. 열여섯 때부터 시작했는데 벌써 80이 넘었네.

소제동에 정착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은 여기가 낙후돼서 재개발도 하고 그러지만, 소제동에 이용원 열 때만 해도 대전에서는 꽤 알아주는 부촌이었어요. 당시에는 철도 관사도 있어서 사람들도 엄청나게 지나다녔고. 그래서 내가 소제동에 와서 이용원을 차렸지. 이건 딴소리이긴 하지만 내가 여기서 이용원 운영하다가 관사 고위직 사람들이랑 친해져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아봤어요 허허.

이용원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보람찼던 때는 언제인가요?

사실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찼을 때는 내가 이발하면서 번 돈으로 우리 자식들 대학 다 보냈을 때. 내가 못 해봐서 그런 건지, 내 자식 내가 번 돈으로 학교 보냈을 때만큼 뿌듯한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단골 손님들이 오랫동안 대창이용원을 찾아주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여기 단골 손님들은 대창이용원이랑 함께 세월을 보내신 분들이라 다들 나이가 꽤 있으셔요. 아무래도 친숙함이 가장 큰 이유겠죠?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에 가면 우리네가 원하는 스타일을 말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 또, 다른 곳 가면 기계 사용해서 머리를 깎아주는 곳이 많은데 나는 최대한 기계를 잘 안 쓰려고 해요. 아직 기계가 손은 못 따라오거든. 나중에 머리가 들뜨면서 자라게 하지 않으려면 가위가 최고야 아직은. 그래서 다들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끔은 단골 손님 아니어도 학생들이 종종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지금 소제동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데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여기가 한 10년 전부터 재개발 얘기가 나왔어요. 그럴 때마다 이제 이용원 그만하고 아내랑 여행을 다니겠다고 했었는데 아직도 시작을 안 했네. 진작 했으면 내가 70살 때부터 놀러 다녔을 텐데 벌써 여든다섯이 됐으니 허허. 근데 이제는 진짜로 2년만 더 있으면 골목 전체가 철거될 거예요. 그렇다고 아쉬운 건 없어요. 내가 쉰 정도 됐으면 아직 더 할 수 있으니 아쉽겠지만, 난 거의 70년을 가위를 잡았으니까… 이제 많이 했잖아요? 여기 소제동 재개발되면 전부터 얘기한 것처럼 우리 아내랑 재미나게 놀러 다니려고 합니다. 그러려고 돈 벌었지 뭐 허허.

마지막으로, 사람들 기억 속에 어떤 이발사로 남고 싶으신가요?

다른 건 필요 없고, 그냥 ‘참 열심히 살았다’ 하는 사람으로 기억해줬으면 하네요. 아등바등 배우려고도 노력했고, 착하게 살려고도 노력했는데 나 정말 잘 살아 보려고 노력한 거. 그거 하나만 기억해주면 바랄 거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