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킨 방앗간이 카페로 변신했다. 높은 함석지붕에 100년 된 정맥기(보리를 찧는 기계), 삐뚤빼뚤한 창틀, 참기름을 짜던 착유기 등 방앗간에서 쓰던 물건들의 먼지를 털어내고 복합문화카페를 만들었다.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넘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지역주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오늘도 100년방앗간은 돌아가고 있다.

강원도 강릉 임당동에 자리한 카페 100년방앗간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운영하던 방앗간이다. 해방 직후 방앗간 주인이 일본으로 귀국한 뒤 그의 직원이 2019년까지 운영을 지속해왔다. 100년방앗간이 그간의 세월 위에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골동품을 좋아하고 수집하는 취미가 있던 임금자 대표가 이 공간에 매료되어 이훈지 이사, 고아라 이사와 함께 카페를 시작하게 됐다. 마침 평생을 방앗간에서 일했던 할아버지가 더 이상 일을 지속하기 힘들어진 시점이었다고.

카페를 준비하면서 방앗간의 원형은 살리되 쾌적하고 넓은 공간을 구현해 내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데만 한 달 이상이 소요됐고 낡은 함석지붕으로 인해 비가 새서 예정에 없던 수리를 진행하기도 했다. 나무기둥과 목재는 가능한 그대로 활용했으나, 훼손된 곳은 최대한 본래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전국을 찾아 헤맸다.

방아 찧는 소리 대신 고소한 커피 향이 가득한 카페 내부 곳곳에는 방앗간에서 사용했던 기계와 도구들이 눈길을 끈다. 보리를 찧던 100년 된 정맥기, 박물관에 전시해도 될 것 같은 고추 빻는 방아, 수 십 년 된 기름 짜는 기계 등 여기선 최소 50년은 넘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 벽에 걸린 구멍의 크기가 제각각인 체들은 마치 전시회장에 걸린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골동품과 1세대 휴대용 전화기, 구형 카메라는 어떤 이에게는 추억을, 어떤 이에게는 흥미와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요즘 카페는 젊은 층을 겨냥한 이색메뉴와 인테리어로 꾸며진 반면, 100년방앗간은 어르신들도 편히 앉을 수 있는 너무 낮지 않은 의자와 귀리라떼, 옛날 쌍화차, 대추 푸딩 등의 메뉴를 갖추어 가족단위나 중장년층끼리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

말끔한 건물에 모던하고 감성적인 카페는 많지만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역주민들은 방앗간이 이렇게 근사하게 바뀌었냐고 좋아하고, 관광객들은 박물관 같은 공간이 신기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자칫 발걸음이 끊겼을 수도 있는 방앗간의 역사와 이야기를 잘 모아 담은 100년방앗간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 덕분이다.

임 대표는 주택가 골목에 뜬금없이 자리한 세모난 지붕의 카페에서 끝나는 게 아닌 복합문화카페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고자 한다. 최근에는 인디밴드‘분리수거밴드’의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앞으로도 강릉의 작가, 아티스트들과 연계한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100년방앗간을 무대로 펼쳐지게 될 것이다.

‘시나미’는 천천히, 느리게라는 뜻의 강릉 사투리로 강릉의 중심지인 명주동 골목을 탐방하는 투어 프로그램이다. 지역 어르신들이 골목해설사가 되어 남대천에서 빨래하고 물놀이를 하던 추억과 강릉단오제 때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이야기 등 몸소 겪은 강릉의 옛 모습을 들려준다. 관광객이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관광지인 강릉읍성의 옛성벽터나 맛집, 사진 찍기 좋은 골목 등이 보석처럼 나타난다.

투어 중 방문하는 ‘마당여는 집’은 특히 인상적이다. 정성껏 가꾼 다섯 곳의 마당을 공개하는데 대문이나 담장이 없어 꽃과 나무를 구경하며 쉬어갈 수 있다. 투어는 명주동 골목 구석구석을 걷는 명주마실코스와 강릉단오제와 관련된 곳을 찾아가는 안녕단오코스 두 가지다. 투어 신청은 파랑달협동조합에서 가능하며 참가비는 명주동 일대에서 현금처럼 사용 가능한 명주쿠폰으로 돌려준다.투어 프로그램으로 끝내기 아쉬운 이들은 근대의상을 입어볼 수 있는 ‘명주노리’와 명주동 주민들이 사진사가 되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는 ‘골목사진사’체험을 이어서 즐길 수 있으니 참고하자.

글, 사진 | 김숙현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