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부캐’가 되어 떠나는 여행, 커뮤니티 호텔 활용법
윤주선
20.07.30
새로운 시대의 로컬 여행법
그 어느 때보다 일상이 소중해진 요즘, 해외로 멀리 떠나는 여행보다 국내 여행이 주목을 받으면서 매일 다니는 동네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여행의 기분을 만끽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마을재생센터의 윤주선 센터장은 새로운 개념의 여행법을 제시하는 커뮤니티 호텔을 통해 지역민들의 일상을 함께 경험하는 여행법을 제시하고 자신만의 ‘부캐’를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강물의 흐름은 강물 안에서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고 책을 읽고 영화, TV를 보는 것도 일상이라는 강물에서 멀찍이 벗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다채롭게 보기 위함일 것이다. 2019년 <모노클(Monocle)> 컨퍼런스에서는 여행의 의미를 재정의하며 앞으로의 여행은 주말마다 동네 숙소에서 묵으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비일상을 통해 일상의 창의력을 재충전하는 일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
서촌의 커뮤니티 호텔 ‘서촌유희’는
서촌에 있는 ‘한권의서점’에서 체크인을 진행한다.
(출처: 스테이폴리오, 사진: 박기훈)
비일상에 깊이 몰입했다 나올수록 일상을 대하는 창의력은 다양해지고, 같은 기간 여행을 떠나도 얻게 되는 인사이트는 달라진다. 그래서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보다 깊이 있게 채우기 위해 여행의 흐름이 유적지 관광에서 현지인의 집에 ‘살아 보는’ ‘에어비앤비(airbnb)’로 옮겨 가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 현지인이 ‘되어 보는’ 커뮤니티 호텔이 부각되고 있다. 커뮤니티 호텔은 건물이 아닌 지역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주고 그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주는 여행 거점이다.
커뮤니티 호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호텔의 운영자다. 커뮤니티 호텔 운영자는 해당 지역의 역사, 음식, 건물, 자연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 내 매력적인 사람들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한다.
지역의 ‘오지라퍼’가 되어 여행자가 어떤 취향의 사람인지, 어떤 사람을 만나면 좋을지 고민하여 지역 자원을 큐레이션하고 여행자와 로컬 크리에이터를 자연스레 엮어 준다. 그 과정을 통해 여행객의 일상과 로컬 크리에이터의 일상이 맞부딪치며 서로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고 새로운 시각을 틔워 준다.
한권의 서점 (출처: 스테이폴리오, 사진: 박기훈)
커뮤니티 호텔이 주로 분포한 지방 소도시와 골목이 주목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다양성이다. 다양성을 만들어 가는 것은 지역 내 ‘자기다움’의 매력을 발산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이 또 다른 매력적인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그 그룹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커뮤니티 호텔 여행자들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독특한 세계관의 그룹들과 평소의 본인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삶을 잠시나마 겪어보는 것이다. 소위 요즘 유행하는 ‘부캐’가 되어 보는 것. 어떤 지역에서는 힙스터 부캐가 되어보고, 어떤 지역에서는 내면으로 파고드는 문학인 부캐가 되어볼 수도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시간이 3배로 느리게 흐르는 유유자적 삶 속에 동화되기도 한다.
군산의 커뮤니티 호텔 ‘후즈’의 커스텀 커뮤니티 맵
(출처: 로컬 프랜들리)
일반적인 게스트하우스가 게스트 파티를 통해 여행자와 여행자를 이어준다면, 커뮤니티 호텔은 여행자와 지역민, 로컬 크리에이터를 연결해준다. 그리고 지역의 맛집과 관광명소가 아닌 일상적인 생활 공간과 식당, 가게를 소개하면서 관광의 효과가 지역 내로 퍼지도록 한다.
교토대학교의 케이타 연구원은 2019년 연구를 통해 커뮤니티 호텔은 일반 프랜차이즈 호텔에 비해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가 5배 이상 높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처럼 커뮤니티 호텔은 관광객과 지역 주민이 한 공간에 있지만 다른 차원에서 활동했던 기존 관광과 달리 여행객과 지역 주민 간의 사회적, 경제적 관계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사업적 측면에서 보면 사회적 자본을 경제적 자본으로 치환하는 고난이도의 지역창업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공주 커뮤니티 호텔 ‘봉황재’의 공주 원탑 오지라퍼,
권오상 대표와 떠나는 마을탐험 (출처: 봉황재)
커뮤니티 호텔은 크게 분산형과 결집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분산형 커뮤니티 호텔의 개념은 1980년대 초 이탈리아의 분산형 호텔인 ‘알베르고 디푸소(Albergo Diffuso)’에서 시작됐다. 호텔의 기능을 단일 건물이 아닌 마을 내의 가게들과의 연결로 분산시킨 모형으로 정의했는데, 여기서 영감을 받은 건축가 미야자키 미츠요시는 이를 마치야도(まちやど: 마을숙소)라는 개념으로 풀어 2015년 도쿄에 ‘하나레(hanare)’를 오픈했다.
하나레는 숙박 이외의 기능을 지역의 기존 식당, 목욕탕, 술집, 자전거 대여점, 기념품 가게 등과 연결해 지역의 일상 속으로 여행객을 끌어왔다. 국내에서도 2013년 서교동 ‘로컬 스티치’를 시작으로 분산형 커뮤니티 호텔들이 오픈했다. 현재는 공주의 ‘봉황재’, 정선의 ‘마을호텔18번가’, 서천의 ‘노란달팽이’, 군산의 ‘후즈데어’와 ‘후즈넥스트’, 서촌의 ‘서촌유희’ 등이 분산형 커뮤니티 호텔을 시도하거나 준비 중이다.
서촌의 커뮤니티 호텔 ‘서촌유희’ 소개 (출처: 스테이폴리오)
결집형 커뮤니티 호텔의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의 ‘에이스 호텔(Ace Hotel)’을 들 수 있다. 에이스 호텔은 분산형 커뮤니티 호텔과 달리 지역 내의 창의적인 사람들을 호텔 로비 등의 공용 공간으로 모으고, 이곳에서 여행자와 로컬 크리에이터들 간의 교류를 유도한다. 일본의 ‘와이어드 호텔’, ‘시탄 호스텔(Citan Hostel)’도 유사한 사례라 할 수 있고, 제주도의 ‘플레이스 캠프’, 순천 ‘바구니 호스텔’도 결집형 커뮤니티 호텔이라 볼 수 있다.
백제의 우아한 예술가 부캐로 지내볼 수 있는
공주 커뮤니티 호텔 ‘봉황재’의 프론트데스크 (출처: 봉황재)
커뮤니티 호텔은 여행객을 일시적 주민으로 만들어 마을의 다양성을 유지시키고, 이들의 구매력을 통해 지방 도시의 일자리를 만드는 기능을 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흐름을 ‘정주인구’ 대신 ‘관계인구’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관계인구 증가를 통한 지역재생은 인구 감소 시대에서 공공성과 사업성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군산 커뮤니티 호텔 ‘후즈데어’, ‘후즈넥스트’를 통해
여행자와 군산 힙스터들을 연결해주는 조권능 대표 (출처: so.dosi)
<삼시세끼>, <런닝맨>, <1박2일>, <무한도전>을 보며 나도 저들 사이에 껴서 같이 놀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커뮤니티 호텔은 지역을 관찰하는 시청자인 여행자를 객석이 아닌 무대 위로 올려준다. 보러 가는 여행에서 만나러 가는 여행으로 여행의 목적을 바꿔준다. 관객이 아닌 배우가 되어보는 여행을 통해 일상을 새롭게 만드는 힘을 얻는다. 이번 여름, 다채로운 지방 소도시의 세계관 속 색다른 부캐를 만들러 떠나는 건 어떨까?
군산 커뮤니티 호텔의 소개를 통해 가장 군산스러운
힙스터 부캐가 되어볼 수 있는 스페인식당 ‘돈키호테’
❝
사람은 환경을 만들고 환경은 사람을 만든다 (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윈스턴 처칠
❞
윤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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